Writing/Review

서찬석 《오류를 지나》 보안여관, 2.19-3.13, 2020

BI JIHYE 2020. 10. 23.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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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찬석  SeoChanseok
《오류를 지나》
2/19-3/13, 2020
보안여관


생의 고귀한 움직임

 

〈고귀한 움직임들〉과 〈그리고 나는 춤을 출래요〉는 2020년 2월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린 서찬석의 6번째 개인전 《오류를 지나》 를 위해 제작되었다. 두 점의 드로잉은 예술의 노동과 삶의 노동 현장에서 작가가 얻은 이중적 경험이 만들어낸 감각의 집체다. 회화, 퍼포먼스, 영상, 조형 등 다매체를 다루는 서찬석에게 회화와 드로잉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작품을 위한 드로잉 말고도 작가는 삶의 단상을 성실하게 그리는 편이다. 그의 드로잉은 예술의 길목에 있는 기술적 행위가 아니라 담긴 이야기 자체에 무게를 두고 프레임 안에서 행하는 예술적 실천이다. 힘을 빼고 쉬이 그려낸 풍부한 표현은 서찬석 드로잉의 묘미다.

 

 

서찬석 〈그리고 나는 춤을 출래요〉 2020, 145.5×121.1㎝, 프레임 3㎜, 린넨에 먹

 

 

벽 속에서 만개한 꽃들 앞으로 채비를 마치지 못한 화분 하나가 놓여있다. 한 꺼풀 씩 잎을 펼치며 피어오르는 꽃들과 달리, 화분에 꽂힌 꽃은 투박한 손에 이끌린 게 분명하다. 어떤 사정이 있었을까. 꽃을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해둔 이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아무 이유 없어, 그저 시들어 버릴까봐.’ 서찬석은 〈고귀한 움직임들〉과 〈그리고 나는 춤을 출래요〉에서 노동이라는 인간의 움직임을 무덤덤하게 그려냈다. 몸에 베인 노동의 움직임과 배반되는 가치를 부여잡고,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은 삶속에서 위태로운 리듬을 만든다. 일을 하는 것과 춤을 추는 것, 그 상충하는 행위를 하나의 몸으로 담아내려면 무덤덤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다는 것을 알아챘다는 듯 작가는 이에 대해 차분한 화면을 만들었다. 생동하는 꽃들이 채운 벽과 대비되는 사물은 작가가 노동이라는 행위로부터 얻은 것을 상징한다. 자유로운 움직임과 피할 수 없는 현실의 움직임은 서로를 다독이며 삶을 전유하는 생동의 시간과 공간을 만든다. ‘깊이도, 흐름도, 빠르기도’, ‘감각도, 느낌도, 깨달음’도 움직임으로서만 채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벽에 갇힌 꽃들의 생동은 몸으로 꾸는 꿈이다. 이를 비웃는 듯 구부정하게 세워진 삽은 결국 혼자 서지 못하고 벽에 기대어 꽃들의 춤사위에 의존한다. 춤을 추기 전의 선언, 꿈을 꾸기 전의 노동, 그렇게 되기로 하기 전에 지나왔어야만 하는 생이 있다. 몸을 움직여서만 얻을 수 있는 대가는 단순히 연명하거나 지속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는다. 나빌레는 사랑, 한 잔의 술, 고상한 취향, 세련된 말투, 비웃음 등 고단한 삶과 동반하는 감각적인 단상들은 환상에 기대 쉬는 삽이 느끼는 생의 기쁨이다.

 

 

서찬석 〈고귀한 움직임들〉 2020, 145.5×121.1㎝, 프레임 3㎜, 린넨에 먹

 

 

린넨 위에 각을 세우거나 흘러내린, 예리하거나 뭉툭하게 맺힌, 빠르거나 천천히 눌러진 먹은 그렇게 그리려고 했다는 작가의 말 그대로 담담하다. 작가에게 타카건은 예술을 위한 노동과 삶을 위한 노동의 간극을 좁히는 매개이자 어느 곳에 있어도 한 손에 움켜쥘 수 있는 그의 무기다. 한 샷 한 샷 쏠 때마다 반복되는 탁 탁 소리와 중간에 압력을 유지하기 위해 공기를 채우는 프레셔의 굉음은 보통의 공사 현장에서 들리는 소음이다. 간혹 이 고약한 소음은 작가의 움직임을 만나 전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반복되는 노동 행위로부터 일종의 리듬이 만들어지고 이는 노동에 활기를 불어넣어 춤사위를 이끌어낸다. 서찬석은 작업노트에서 ‘몸의 움직임은 삶과 예술에 보상을 안겨 준다.’며 ‘보상을 위한 움직임인지 혹은 움직임을 위한 보상인지 그 순서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고독하고 반복적인 움직임은 매우 느리거나 빠른 춤을 추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고 적었다. 작가의 생에서 현실을 지배한 꿈, 꿈을 지배하는 현실은 공존하며 익숙한 동작을, 다소 불편한 자세를, 생경한 깨달음을 준다.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예술 활동을 위해 노가다를 마다하지 않는 작가는 고단함을 수반하는 삶 속에서 일렁이는 꽃들처럼 움직임으로부터의 보상을 얻는다. 칼같이 맞아 떨어지는 고난이도의 안무가 아닌 그의 몸에서 출발한,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막춤처럼 마냥 전유함으로 말이다. 생은 그 자체로 고귀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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