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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저. 임형택 해 《문장강화》 창비. 2005

BI JIHYE 2021. 7. 16. 14:46

그런데 조선시대 산문에서는 이 수사를 이론화한 바가 극히 적었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문장을 읽어보면 수사관념에 얽매이지 않은 문장이 별로 없다. 비판 없이 맹목적으로 한문체를 모방하는 바람에, 수사로 인해 문장이 발달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중독에 빠지고 말았다. 

 

금풍이 소삽하고 옥로조상한대 만산홍수가 유승이월화진이라 원상백운석경하야 공연정거좌애풍림만지구가 여하오

-어느 척독대방에서 

 

친구에게 단풍구경을 가자고 청하는 편지다. 그런데 한 마디도 자신의 말이나 감정이 없다. '옥로조상'은 두보의 시 "옥로조상풍수림"에서, '유승이월화진'은 당시 "상엽홍어이월화'에서, '원상백운석경'은 "원상한상석경사 백운생처유인가"에서, '정거좌애풍림만'은 당시 "정거좌애풍림만"에서 그대로, 모두 고전에서 따다 넣어 연결만 한 것 뿐이다. 제 글을 쓰기보다 전고에서 남의 글을 잘 따다 채우는 것이, 과거 문장작법의 중요한 일문이었다.

 

얼마나 자기를 개성을 잃어버린 그릇된 문장정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