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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ableart

그와 나의 장애, 한수희

김소원. 꿈과 상상. 2016. 45×53㎝. 종이에 색연필

 

그와 나의 장애 
 
부끄럽고 한심한 고백이지만, 나는 장애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는 어른으로 자랐다. 주변에 장애를 가진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도 없었다. 장애를 가진 이와 가까이 지낼 기회라곤 전무했다. 가끔 지하철 안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본 적은 있다. 멈추지 않고 돌아다니거나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이상한 질문을 던지는 이들을. 사람들은 그들을 슬슬 피했고 나 역시 무섭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언제나 그들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작년 한 해를 자폐성 발달장애 청년에 대한 책1)을 쓰면서 보냈다. 말했다시피 장애에 대해서는 아는 것 하나 없었기에, 타인의 인생에 대해 쓴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도 쉬운 일도 아니기에, 근 1년 동안 청년을 쫓아다니고 사진을 찍고 그날 본 것과 들은 이야기들을 정리하면서 나름대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청년은 발달장애 2급의 자폐성 장애인이었다. 그게 그에게 붙은 딱지다.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저 준수한 용모에 체격이 좋은 동네 청년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의 장애를 눈치 챌 수 있다. 어린 아이처럼 높은 톤의 혀 짧은 말투와 불안한 표정, 흔들리는 눈빛. 청년은 종종 자기 손바닥을 향해 무어라고 중얼거린다. 긴장하거나 당황하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위를 빙빙 돈다. 집에 돌아와서는 이유 없이 벌떡 일어나 몸을 격렬하게 앞뒤로 흔들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마다 대화가 끊어지지는 않을지, 내가 쓸 데 없는 소리를 한 것은 아닌지, 그가 나를 좋아하는지 아니면 싫어하는지, 헤어질 때는 나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게 될지 남몰래 걱정하곤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처음 이 친구와 단둘이 함께 다니게 된 날에도 같은 문제로 긴장이 되었다. 어느 순간 나는 오랜 버릇대로 그의 환심을 사려 노력하고 있었다. 대화가 끊어지지 않도록 주의했고, 친근하고 쾌활한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아시다시피 그건 무척 피곤한 일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아, 그는 그런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구나. 


대화와 대화 사이의 공백을 그는 어색해하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그는 나와 눈을 맞추고 내 말이 엄청나게 중요한 말인 것처럼, 마치 이 세상의 마지막 말인 것처럼 열심히 들었다. 그는 나에 대해 판단하지도 평가하지도 않았다. 이 사회의 잣대를 나에게 들이대지도 않았다. 나를 만나기 전이나 헤어지고 난 후의 일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에게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해 보였다. 그런 면에서 그의 마음은 순수했고 그 순수함은 분명 장애로부터 기인한 것이었다. 


그는 농담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좋은 것은 좋아했고 싫은 것은 싫어했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왜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몰랐고, 해야 하는 것들을 왜 해야 하는지 몰랐다. 물론 오랜 세월의 피나는 노력 끝에 이 사회에서 환영받을 만한 태도를 흉내는 내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완벽하게 납득하지는 못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그는 비정상이었고, 또 바로 그런 이유로 그는 순수한 인간이었다.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이 정상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자기 자신이 진심으로 특이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때로 우리는 정상의 삶에 가까워지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말과 행동과 삶에 불쾌해하고 비난의 잣대를 들이대기도 한다. 그런데 남의 비정상에 그토록 가혹한 까닭은 어쩌면 내 안에 숨은 비정상에의 공포 탓이 아닐까. 


따지고 보면 이 사회에 섞이기 위해, 이 사회의 비정상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강한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일까. 나 역시 마음 속 깊이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단지 배운 대로, 튀지 않기 위해 하는 행동과 말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면서 내가 이 사회에 걸맞은 존재가 되었다는 안도감과 ‘이런 것은 하고 싶지 않은데’의 불편함을 동시에 느낀 적은 또 얼마나 많은가. 정상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큰 고통을 떠안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내가 원하지도 않는 삶을 매일같이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선은 사실은 정말로 가늘다. 그리고 불완전하다. 언제고 그 선은 옅어지거나 구부러지거나 또는 끊어질 수 있다. 그 1년 동안 나는 이런 것들을 알게 되었다. 결국 발달장애인인 그들이 우리의 눈에 이상해 보이는 행동들을 하는 이유는 그들이 이상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세상이 그들에게 너무 이상한 곳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장애라는 건 개인의 정신적, 신체적 특이성과 개성이 지나치게 발현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장애를 끌어안은 채 산다.

 

결국 그 책을 쓰는 일이 단순히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인생에는 때때로 뛰어넘어야 할 허들 같은 것들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나에게는 그 시간이야말로 허들이었을 것이다. 허들을 넘었다고 해서 외형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떼돈을 벌지도 상장을 받지도 못했다. 당연하지만 키가 자라거나 얼굴이 예뻐지지도 않았다. 다만 나의 마음의 키는 적어도 5cm는 자랐을 것이다. 누구도 모르지만 나 자신은 안다. 그 허들을 넘으면서 나는 지금껏 안 적도, 본 적도 없는 세계를 보았다. 그리고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그 해에 내가 아무 이유도 없이 종종 가슴이 벅차오르며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잦았던 이유는, 아마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1) 박미영, 한수희 저. 마음의 속도. 마루비. 2017

 

* 한수희(칼럼니스트, 작가)

* 이 글은 2017년 플레이스막 연희에서 열린 기획전 ⟪Normal Abnormal⟫의 전시서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