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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Curating

신용진《공기색 입자》10의 n승(서울), 12.10-12.29, 2024

나는 말했다. “당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왜 하필이면 선대 작가를 중심에 두고 당신의 생각이 펼쳐지나요?” 내 불만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미술로 말하는 미술이나 미술을 말하는 미술은 매력적이지 않다. 왜 “존재”를 곱씹으면서 자기 존재는 어느 세계에 그치게 두어야 하는지. 그 조건을 차치하고서도 나는 내가 파악한, 그가 말하는, 그의 삶 전체를 장악한 “미술”에 관심이 없기도 하다. 하지만 신용진은 내가 그와 만나게 된 인연을 놓치지 않기를 바랐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나는 인연마다 다를 수 있는 기획의 폭에 대해 경험하고 싶기도 했다. 태도도 형식도 내가 들어갈 자리가 잘 보이지 않는 전시에서 기획이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는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신용진만 질기게 여기는 박서보와 그의 인연에서 나는 무엇을 찾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며 서문을 적기로 한다.
 
‘10의 n승’ 디렉터가 나에게 이 전시의 기획을 의뢰했지만 작가가 세워둔 기획은 이미 견고했다. 작가가 8년을 묵힌 전시니 하고 싶은 것은 매우 명확했다. 작가에게 이 전시는 꼭 지르밟고 지나야 하는 어떤 징검다리 같아 보였다. 그는 더 나은 방향을 위해 변화하고 싶다 말했지만 변화를 선택하지 않았다. 마치 뒤집어쓰고 온 망령이 너무 강해 누름굿을 해야 하는 상황처럼 그는 자신에 대한 강력한 믿음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신용진이라는 작가는 자기 세계의 시스템을 명확하게 세우고 운영하며 그에서 일어나는 결괏값을 관찰하는 성향이 있다. 치기 어리게 도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 인연을 귀하게 여기고 ‘곱씹어 다루는 재미’를 느끼는 성향이 있다. 진지해 지거나 엄숙해지면 그가 언급하는 것들이 다 기화돼버리기 때문에 치고 빠지는 가벼운 운동성으로 “재미”의 무게감을 유지한다. 사실 이런 재미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는 것은 힘들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상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장애와 예술이 분절된 키워드로 사용되는 것을 용인하는 현장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속하며 당사자성의 취약함을 몸소 익혀왔기 때문에 신용진이 시전하는 “재미”의 긍정적인 측면이 더 크게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고자 하는 욕구 말이다.
 
나는 현실에서 비아냥으로 보일지 모르는 신용진의 무거운 내면을 전시로 개진하고 싶었다. 신용진이 박서보를 다루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존경의 마음과 더불어 권력을 가지고 노쇠해 버린 인간에 대한 연민 또한 있다. 왜 박서보를 두고 음양의 조화를 이야기해야 하냐는 내 질문에 작가는 허술하게 대답했다. ‘그냥 하면 되죠. 왜 안 돼요? 내가 그와 있었잖아요. 사실이잖아요.’ 전시를 앞두고 작가를 대신해 나 스스로 답을 찾아보면 세상의 기본 구성 원리인 음양을 말할 만큼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있다. 싫었거나, 말거나. 인간으로부터의 영향이 아니라 박서보를 둘러싼 모든 환경과 에너지의 흐름 같은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신용진 말이다. 대가의 작업실에서 오랜 기간 일한 어시스턴트, 아니 기술제공자는 자신이 환상을 품었던 대상에게 존중받고 싶었을 것이다.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그는 분명 박서보가 말하는 수행의 일환이었다. 다만 스튜디오 안을 꽉 채웠던 미세한 입자들 사이 간격은 기술제공자인 신용진과 박서보의 거리이지 않을까.
 
“도대체 공기색이 뭡니까?” 신용진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1년 반의 시간 박서보의 작업실에서 일했다. 기술노동자로 일하게 된 계기는 아주 단순했다. ‘유명한 작가에게 배울 것이 많겠지.’ 한 인간에게 기대를 품고 들어간 스튜디오에서 신용진은 실망했다. 박서보는 알려진 대로의 예술가, 한 사람이 아니었다. 신용진은 그가 수많은 관계와 상황으로 뒤얽힌 복잡한 개인임을 경험했다. 하지만 기술 보조 일은 재미있었다. 작품 표면에 날을 세우기 위해 종이와 종이 사이를 사포로 긁어내며 신용진은 더 잘 된 작품이 나오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신용진은 그에게 허락된 영역에서 박서보의 작품을 만들어낼 때 더 잘 되고 덜 잘 된 부분은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감각을 지니게 되었다. 그는 작업실 밖으로 나가 작품이 될 작업물의 선택 과정을 지켜보며 탈락한 입자들을 생각했다. ‘이건 더 심혈을 기울였고, 저건 아니고...’ 하는 순간들이 있었을 거다. 탈락한 입자와 살아남은 입자 사이에는 예술을 결정짓는 선이 있다. 얼마만큼 더 탈락 시켜야 또는 남겨두어야 박서보의 이름을 단 기술노동이 될 수 있는지 그 값을 구하던 신용진이라는 사람의 시간을 온전히 본인의 것으로 복권할 수 있는 방법 말이다.
 
신용진은 전시 표제를 정할 때에도 계속 ‘회색빛 입자’라는 말을 쓰기 원했다. 나는 박서보가 교묘하게 등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신용진이 자기 내면의 박서보라는 세계를 인정하고 입장을 정리하여 내놓기를 바랐다. 그에게 권유했다. ‘정리가 안 되시면 편지를 쓰세요.’ 박서보가 정의한 자신의 색과 수행의 의미 안에 있었던, 즉 형식을 일구는 정신의 세계가 어느 시점 이후로 프로덕션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프로덕션을 부정적으로 보는 게 아니다. 창작과 감상은 다른 몸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그건 또 다른 측면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신용진의 판단이 어떠냐라는 것과는 또 다르게 그에게 공감하게 되었다. 나는 신용진이 감정적으로 인식하는 박서보와의 인연을 비추는 것 또한 의미가 있다는 데에서 나와 합의했다. 박서보라는 인물이 왜 그렇게 당신의 삶 전체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거냐고 재차 묻는 나에게 용진은 한 장의 편지를 보내왔다. 내 역할이 필요 없다는 데도 마지막까지 나를 필요로써 귀하게 여겨준 용진에게 감사를 전하며 그가 쓴 편지를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