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손상'은 어떻게 '장애'가 되는가
p.73
발달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없음'이라는 장애를 경험하는 원인이 그들의 인지적 '손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p.74-75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관계이며,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장애인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 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손상을 지닌 무능력한 사람이어서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문제로 정의된 사람들이 그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 John Mcknight, 1995
p.83
장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애인도 더 단결하고 스스로 권리 의식을 높여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비장애인이 바뀌고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비장애인이 장애 문제의 한 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며, 장애 문제의 해결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장애를 이런 식으로 이해할 때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비로소 타자화하지 않을 수 있다.
3장. 우생학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p.136
물론 여성에게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임신을 중절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하지만, 그녀는 또한 임신을 중절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다는 느낌을, 그녀와 그녀의 아이가 충족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가 할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는 확신을 지닐 수 있어야만한다. Ruth Hubbard, 1997
p.139-140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두는",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
p.144
아감벤은 주권 권력에 의해 비오스의 영역에서 추방되고 배제되어 조에로서만 존재하는 생명을 발터 벤야민이 이야기 했던 '한갓 생명bloßes Leben'과 한나 아렌트가 이야기한 '단순한 생명sheer life' 개념을 참조해 '벌거벗은 생명'이라고 부른다.
p.145
위상학적으로 말하자면 법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극한.문턱, 좀 더 정확히는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불가능해지는 비식별역zone of indistinction에 해당한다.
p.154-155
위르겐 하버마스가 착상 전 유전자 진단 기술의 우생학적 위험성을 강하게 지적하며 철학적 비판을 수행했던 것이 결코 노철학자의 과민 반응은 아닌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스티븐 크루스의 다음과 같은 통찰은 현대의 유전학적 서비스를 정당화하는 소위 '자율적 선택'이라는 수사가 지닌 근본적인 난점과 허구성을 드러내며, 동시에 우생학적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한 우리의 실천 또한 매우 근본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음을 성찰하도록 이끈다.
A는 B가 원치 않는 것을 하게 만듦으로써 B에 대해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지만, A는 또한 B가 원하는 것 그 자체를 형성해내고, 거기에 영향을 미치고, 그렇게 하도록 스스로 결정하게 마듦으로써 B에 대해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나 타자들이 가져주길 원하는 바로 그 욕망을 그들이 실제로 갖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최고의 권력의 행사가 아니겠는가? Steven Lukes, 1974
p.156-159
현대사회에서 우생주의에 대한 저항은 서로 연동하는 다음의 두 가지 차원에서 모색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주체의 측면에서는 신자유주의적 통치권력과 우생주의적 욕망에 대한 예속화assujettissement에서 벗어난 주체화subjectivation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확장하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다. ... 순응적.복종적 주체의 형성은 단 한 번의 과정을 통해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반복의 과정을 통해 성공을 거두는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반복적인 갱신과 재생산의 과정에서 일정한 균열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존한다. ...둘째, 사회구조적 측면에서는 저항권의 발동을 통해 사회적 배제의 메커니즘을 악화시키고 해체하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다. 아감벤의 생명권력 이론에서 주권자란 카를 슈미트의 정의를 따라 "예외상태에 관해 결정하는 자"로 규정되는데, 이와 같은 주권자는 법의 외부와 내부에 동시에 위치하는 역설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즉 주권자는 법질서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권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법의 외부에 위치하지만, 동시에 그 권려을 법을 통해 정당화하면서 법의 내부에 자리 잡게 된다. 주권자의 이런 위치는, 법에서 배제되어 있지만 바로 그 배제의 형식을 통해 법에 포획되어 잇는 호모 사케르의 위치와 정확히 상응한다.
4장.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론, 해방인가 또 다른 차별인가
p.166
'모든 인간은 ~다'라는 명제가 지닌 휴머니즘적 보편주의는 두 가지 방식으로 다시 차별과 위계화를 정당화한다. 첫 번째 대우명제contraposition의 작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 모든 인간은 이성적 존재다'라는 명제가 참이라면 '이성적이지 않은 존재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명제 역시 참이 되고, 이를 통해 이성적이지 않은 인간은 인간 이하의 인간으로 격하되고 만다. 두 번째 방식은 근대적 보편주의에 본원적으로 내제해 있는 '제유synecdoche로서의 보편주의'가 작동하는 거이다. 즉 인간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제시된 특정 분파의 인간 ㅡ예컨대 백인 이성애자 남성 부르주아 비장애인ㅡ이 어떤 규범성normativity 내지 정상성normality을 획득하고 되고, 이 규범성/정상성에 미달하는 다른 인간 분파를 차별하고 억압하고 배제할 수 있게 된다. 발리바르의 이런 설명과 통찰은 휴머니즘이 왜 장애정치의 이념적 기반이 될 수 없는지,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해방적 장애 정치가 왜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야 하는지 사고할 수 있도록 돕는다.
p.177-178
싱어 등을 비롯한 동물권animalright 이론가들이 만들어낸 '인간 아닌 인격체nonhuman person'라는 신조어를 분해한 후 재조합해서 표현해보면, 1️⃣인간 인격체human person 2️⃣ 인간 아닌 인격체(인격체와 유사한 인지능력 및 언어능력을 지닌 동물들, 즉 유사인격체) 3️⃣ 인간 비인격체human non-person(태아 및 유아, 심각한 발달장애를 지닌 인간)와 인간 아닌 비인격체nonhuman non-person 4️⃣ 쾌고감수능력이 없는 하등 동물과 식물의 순서로 생명의 가치에 대한 위계와 서열이 존재한다.
p.185
자연(신)의 관점에서 인간이라는 양태는 자연이 산출한 다른 어떤 양태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를 갖지 않는다.
p.186
마굴리스는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아는가는 우리가 어떤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환기하면서, '거대한 존재의 사슬'이라는 진화의 관점, 그리고 그 사슬의 끝과 세계의 중심에 인간이라는 존엄한 존재가 있다는 관점이 우리로 하여금 다양한 생명체들 간의 공생을 볼 수 없게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린 마굴리스, 2007 예컨데 인간의 경우만 하더라도, 수분을 제외한 몸무게의 10퍼센트 이상은 살아 있는 세균이 차지하고 있으며, 세균과의 공생 관계 없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린 마굴리스, 2011
p.187
마굴리스 또한 "우리 눈에 보일 만큼 큰 생물들은 모두 한때 독립생활을 했던 미생물들이 모여 더 큰 전체를 이룬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 진술은 스피노자의 '개체화'라는 개념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p.188-190
모든 생명체는 사실상 수없이 많은 하위 개체sub-dividual들이 개체화된 결과인 것이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개체가 개체화를 통해 구성된 집합체일 뿐만 아니라, 그 실존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인용문에서 기술되고 있는 것처럼 항상 자기 외부의 개체들에 의해 의존해야 한다고 본다.
모든 개체, 즉 유한하고 한정된 실존을 갖는 모든 것은 마찬가지로 유한하고 한정된 실존을 갖는 다른 원인에 의해 실존하고 작용하도록 결정되지 않는 한 실존할 수도 없고 작용하도록 결정될 수도 없다. 그리고 다시, 이 원인도 마찬가지로 유한하고 한정된 실존을 갖는 다른 원인에 의해 실존하고 작용하도록 결정되지 않는 한 실존할 수도 없고 작용하도록 결정될 수도 없다. 이처럼 무한하게 나아간다. 스피노자, 2014
발리바르는 이렇게 모든 개체들을 가로지르는 무한한 연관 관계가 각 개체의 실존 및 활동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관개체성transindividuality'이라는 용어로 개념화한다. 자연 안의 모든 개체들은 자립적이고 자기 완결적인 존재가 아니라 관개체적인 존재이며, 이는 인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Studies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상현 저 《라깡의 루브르》 위고. 2016 (0) | 2020.02.20 |
---|---|
오스틴 해링턴 저. 정우진 옮 《예술과 사회 이론》 이학사. 2014 (0) | 2020.02.09 |
에릭 캔델 저. 이한음 역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 프시케의숲. 2019 (0) | 2020.02.08 |
프랑수아즈 가데 저. 김용숙 임정혜 옮 《소쉬르와 언어과학》 동문선. 2001 (0) | 2020.02.08 |
크리스트야나 크리스티안센 외 저. 김도현 역 《철학, 장애를 논하다》그린비. 2020 (0) | 2020.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