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6
다시 강조 하건대, 그곳은 박물관의 모든 환상들이 출현하는 원인이되었던 장소이다. 따라서 그곳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는 이미 문명과 인간 자신에 관한 환상을 횡단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환상에 사로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필연코 그곳에 도달하는 운동을 반복해야한다는 것인데, 그러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 질까? 최소한 우리는 우리 자 신을 사로 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존재와 세계의 좌표들, 즉 토포스의 현실성이 하나의 신기루 였다는 사실을 알게되지 않을까? 그토록 견 고해 보였던 박물관의 벽과 천정, 그리고 복도의 구조가 한여름 밤의 꿈과 같았다는 사실을 알게되지 않을까? 우리 자신을 사로 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완고했던 숙명적 삶의 스토리가 한 편의 조잡한 동화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지 않을까? 바로이 순간을 롤랑 바르트는 비 장소, 즉 '아토 포스'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p.58
우울증 또는 단지 우울함이라고 묘사 될 수있는 마음의 상태는 정신병으로서의 멜랑꼴리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데, 생각의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지는 것이다. 여기서 사유의 흐름이 느려진다는 것은 상적이거나 문학적 표현만은 아니다. 우울한 상태의 마음은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실질적 증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우울한 마음은 자신의 슬픔을 말로 설명할 능력이 없거나, 있더라도 그것을 거부하는 상태에있다. 이는 자신의 상실을 타자의 언어로 애도하지 않으려는 거부의 표현이기도 하다. 애도라는 것은 상실한 대상을 현재의 언어 또는 타자의 언어로 설명하고 상징화하는 작업이다. 우울증이나 멜랑꼴리는 자신의 상실을 언어적 연쇄로 설명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대상 a들의 순환이 정지된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이를 애도의 기능장애라고 부를 수 있겠는데, 이때 출현하는 것은 상실된 것의 빈자리, 즉 텅 빈 허무이다. 우울증이나 멜랑꼴리가 자기 파괴적 충동에 쉽사리 노출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허무의 증상과 관련이 있다. 산물들(a) 또는 언어의 기표-연쇄를 통해 보호받지 못한 우울증자가 텅 빈 허무의 자리에서 마주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물 그 자체, 충동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울증과 멜랑꼴리는 기표-연쇄가 빈곤해진 상태이며, 사유가 기민함을 상실한 상태이다.
우울함을 묘사하는 또 다른 용어인 허무는 바로 그렇게 더 이상 사유할 대상이 없게 된 세계, 리비도가 투자 될 대상이 부재하는 세계를 의미한다. 사유가 정지하면 언어의 빈자리에서 허무가 피어오르고, 허무의 공백은 사물을 드러 낼 것이다. 그리고 사물의 출현은 과도한 주이상스의 불안을 노출하며 자아는 이에 대한 극단적 거부를 통해 자기 비난의 유령들을 잔혹한 초자아와 함께 불러낸다. 이것은 인류의 문명이 선사시대의 어두운 동굴 속에서 마주친 최초의 우울 또는 최악의 허무였을 것이다. 동굴 속의 우리, 호모사피엔스는 사물의 불안과의 조우를 피하기 위해 사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고, 마침내 거대한 언어의 성을 쌓는 데 성공한다.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사물의 자리인 허무의 공백을 효과적으로 폐쇄하기 위해서 인류의 자아는 문명의 벽돌을 쌓아 올린다. 그런 의미에서 루브르와 같은 역사적 건축물들은 사물의 파괴적 허무를 가두는 감옥과 같다고 은유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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