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생명체가 자신의 존재를 느끼고 있다. 보이는 것은 없다. 작은 빛도 소리도 없다. 적막 속에서 눈의 온도를 느끼고 심장의 에너지를 느낀다. 문득 떠오른다. 내일의 일과. 고요한 명상의 시간이 사라지고 생명체는 내일의 날씨가 궁금해진다. 더듬더듬 폰을 찾는다. 작은 창이 환해지고 눈과 폰이 마주한다. 빛을 내는 작은 물체는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의 말캉한 피부와 붉은 피, 복잡한 신경, 반짝이는 수정체를 비춘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니 고양이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기는 어딜까. 작은 불빛에 의지해 스위치를 찾았다. 딸깍. 오래된 형광등에 전류가 흐르고 무한한 공간의 실체가 드러난다. 아, 내 방이구나.
2021년 4월 17일부터 5월 7일까지 연남동 플레이스막1에서 웁쓰양의 개인전 ‘그림 좋다’가 열렸다. 본 전시에서는 최근 작업을 마친 12점의 회화와 21점의 드로잉이 소개되었다. 웁쓰양은 2008년 회화로 데뷔했다. 2011년부터 그는 도시놀이개발 프로젝트로 대중 참여형 퍼포먼스 작업을 전개해왔다. 그중 ‘멍때리기 대회(2014-)’는 대중의 관심과 언론의 주목을 모두 얻고 여전히 성행중이다. 하지만 작가에게 이 프로젝트는 아직 고민할 것이 많이 남아있는 작업의 일부다. 작가는 불안한 정신, 인간의 나약함, 빠른 템포에 대한 고민이 가볍게 브랜딩 되는 현장을 목격했다. 또 세상에 던진 작가의 아이디어가 재현될 때 작가를 철저하게 배제하는 현실도 마주했다. 코로나로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게 된 시점에서 작가는 ‘작업’과 ‘예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는 행위의 고독과 한계, 사람들과 공유하는 작업의 수용과 경계에 대해서 말이다. 웁쓰양은 멍때릴 기회를 대중에게 선사했지만 정작 그는 멍때리는 행위와 멀어졌다. 대회의 일정은 숨 가쁘게 돌아갔고 그림을 그릴 때 경험했던 번-아웃이 다시 그를 찾아왔다. 대중의 관심과 동요가 벅찬 한편 마음에 고이는 허전함 때문이었을까. 그는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해부터 작가는 작은 종이에 드로잉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두려웠다. 그는 자의 반 타의 반 다시 화면 앞에 섰다. 의무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그는 생각을 덜어내고 상상을 덜어가며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익숙한 공간에서 친근한 사람들과 함께 인지한 공기, 온도, 습기, 날씨, 빛 등이 그가 가장 즐겨 쓰는 색으로 무던히 기록되었다. “대단한 일상은 없어. 흘러 다니는 감정을 만났다고 할까. 일상의 순간을 포착한 거지.” ‘그림 좋다’전은 플레이스막의 제안으로 열리게 되었다. 쇠를 달구어 힘찬 망치질로 날을 벼리는 대장장이처럼 가만히 작가를 지켜보며 알맞은 시점에 적절한 부담을 가하는 디렉터의 노련함이 작가의 가능성을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는지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전시 한가운데서 작가는 회화에 대한 지독한 강박을 떨쳐버렸다. 나는 그에게 전시 준비가 끝났어도 그림을 쉬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는 행위를 집어 삼킨 감각의 자유가 계속 이어졌으면 했기 때문이다.
“파란색 몸을 그려도 되고, 어떤 부분은 뭉개도 돼. 그림이잖아. 과감하고 단순하게 밀어 버리면서 ‘아, 재미있구나.’ 했어. 이렇게 쉽게, 즐겁게 그려야지. 여기는 더 해야지 하다가 ‘됐어.’ 하기도 하고 불안해하는 나를 조종하면서 두어 달을 보냈어.”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려도 괜찮다는 믿음, 작업에는 정답이 없다는 자신감이 눈과 손과 정신의 출구를 마련했다. 작가는 자유롭게 그리면서도 빛깔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피부 묘사를 좋아했어. 사람의 살에 인공조명이 반사되는 게 좋더라고. 자연에 있는 사람 말고 방 안에 있는 사람. 형광등 불빛은 가끔 폭력적으로 보이기도 해. 하지만 인공적으로 발광하는 빛이 사람을 비추면 아름다워.” 빛은 존재를 비추고 존재는 색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피부를 그린 것이 아니다. 쓰고, 읽고, 몇 번이고 되뇌는 글처럼 반사되는 빛을 적었다. “색은 그냥 느껴지는 대로 썼어. 바로 이 색을 만날 때까지. 재미있었어. 본능적으로 그렸으니까. ‘아,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하면서.”
웁쓰양의 ‘그림 좋다’전은 회화 완판의 기록을 세웠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작가의 복잡한 시간을 그만의 빛깔로 보여주었기 때문일 테다. 그의 온갖 정서가 색으로 귀결되어 화면이라는 순간으로 맺혀있다. 그의 화면에서는 장판 위를 걷는 고양이의 발걸음 소리, 비강이 부어있는 사람의 콧바람 소리, 간혹 들리는 소형 청소기 소리, 종이 위 지우개 가루를 손바닥 옆면으로 훑어 버리는 소리가 들린다. 멋진 예술 만들어내기에 치이고 거대한 관념 거적에 덮여 숨이 막힐 지경이었는데 연남동의 조그마한 공간에서 산뜻한 공기를 마시고 나니 한결 나아진 기분이다. ‘산뜻하게 절망적인’ 아주 오래전 작가의 작업실에 걸려 있던 문구다. “당신, 지금도 절망적이야? 여전히 그렇다고 해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노련하게 희망적으로 놀아주길 바랄게. 그곳이 화면이든 한강공원이든 상관없어. 당신 그림 속 무한하게 열린 공간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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