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riting/Review

김도희 《씨가 말랐대》 씨알콜렉티브, 8.13-9.23, 2020

인간 기운이 하늘로 상승하기 위해서는 땅과 불을 지펴야 한다. 육신이 불을 지피고 하얀 연기가 끝을 알릴 때까지 쉬지 않는다. 돌고 돌아라. 기운이여. 김도희의 '강강술래'는 고대 벽화를 떠오르게 한다. 붉은 옷으로 치장하고 엉덩이를 내놓은 보잘것없는 인간들이 함께 모여 원을 그리니 거세의 신이 된다. 칼을 들지 않고도 씨를 바짝 말리는 기운이 하늘에 닿는다. 종족 번식의 과정은 지적 영역을 수호하는 인간까지도 다시 동물로 내려놓는다. 아이를 배면 인간은 신경이 고도로 예민해져 절정에 이른다. 아이를 낳으면 무덤처럼 솟아 딱딱해진 가슴에서 처신할 수 없을 만큼의 젖이 뿜어 나온다. 압력을 견디지 못해 줄줄 흐르는 양 가슴의 젖을 보고 있노라면 책에 적힌 글 따위는 온데간데없어지고 생물만 남는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 젖은 부드러워지고 젖을 못 물리면 젖은 다시 오래된 무덤처럼 단단해진다. 흐르는 젖을 부끄러워하는 현대인을 생각하면 현대 인간 종족이 가진 성이라는 관념 자체가 얼마나 가벼운지 가늠할 수 있다. 흰 티셔츠를 누렇게 삭히고, 시간이 지나면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 인간의 젖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아이를 낳을까 말까 고민하고 최고로 키우고 싶다고 말하는 인간의 모든 순간이 자연에 빗대 생각하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사랑에 빠지고, 선택하고, 아이를 낳고, 선택하고, 문제가 일어나고, 분노하고, 이 모든 것이 오만할 테다. 자연에는 종족의 사회와 사회가 만든 규범이 있고, 오만한 인간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규범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규범이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인간이라면 당연하다.'라는 근거 없는 논리로 인간 사회 중심에 세워져 있다. 이 견고한 인간 잣대에 댈 수 있는 인간이라면 결코 피할 수 없는 불구덩이에 빠진 것이리라. 인간이 자연을 가늠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고, 인간은 그럴 수 있으리라 자만하지만, 인간은 결코 가늠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인간 사회의 규범에 충실한 것일 뿐. 무지하거나, 자만하거나, 착각하고 있다 할 지언정 스스로가 하나의 생명으로 존재하기 위해 마련한 절대 규칙이니 수작을 부리는 자는 인간으로서의 대가를 치르게 될 테다. 돌고래는 돌고래들의, 늑대는 늑대들의, 악어는 악어들의 규범이 있다. 그렇기에 돌고래이고, 늑대이고, 악어이다. 어떤 이가 규범을 어기고도 인간이기를 바랄 때 종족은 분노를 느낀다. 종족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보다도 지나치게 오만해서 존재뿐 아니라, 어떻게 지키고자 하는지, 어떤 생명체가 되고 싶은지 반성하고 성찰하고 축적한다. 지나온 시간에서의 모습보다 나은 종족이 되기를 바라는 인간은 규범을 어기는 인간을 단죄해야 한다. 하지만 딱하게도 인간은 인간을 단죄할 수 없다. 영리하게도 종족의 불완전함을 눈치채고 잽싸게 두 손을 모아 자연을 향해 속죄하는 인간이 있다. 속죄를 위한 비손이야말로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어 인간 내부를 자연으로 꺼내 자연을 가늠하는 진실한 행위가 아닐는지. 

 

0123

전시장 앞쪽에 위치한 원색의 화면에는 텍스트가 빠르게 지나간다. 너무나도 인간적인 한 사람은 그가 표현할 수 있는 갖은 도구를 써서 분노를 전달한다. 출력장치에 담긴 사운드, 텍스트, 색의 속도는 인간의 신경을 쉴 새 없이 자극하며 인간의 분노가 얼마나 깊은지 보여준다. 하지만 암만 화를 내봐야 변하는 건 없다.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란 너무나도 나약해서 종족의 규범조차 합일하지 못한다. 저마다 다른 반성과 다른 겁탈이 종족을 씹어 삼키기 때문이다. 인간 만큼 반은 선하고 반은 악한 무리가 있을까. 김도희는 비루한 내면의 분노로 친구들의 이름을 불렀다. 부름에 답한 이들이 모여 산에 올랐다. 구불구불한 흰 연기가 하늘로 오르며 인간 무리가 땅에 있음을 알린다. 하늘은 나무에 둘러싸인 인간 무리와 연결된다. 땅은 인간이 지핀 불과 인간을 만드는 물을 받치고 있다. 하늘로 오르는 연기가 멈추고 불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불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돌던 인간들의 발이 빨라진다. 부자연스럽던 인간의 움직임이 음과 쉼을 번갈며 자연스러워지고 모닥불이 제풀에 솟구친다. 절정에 이르러 인간을 만드는 인간 무리의 볼기짝이 하늘에 닿으니 비로소 날카로운 칼이 허공에 부림 한다. 종족의 규범을 쇠하게 하고 같은 종족을 겁탈한 주제 모르는 미천한 인간의 뇌를, 심장을, 성기를 벤다. 언제 한번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이토록 따듯하게 잔인한 적 있었나. 법의 테두리 혹은 생명과 안위를 존속하게 하는 관습과 도덕의 틀 안에서 단죄한 적 있었나. 따듯하고 다정한 단죄의 의식은 종족을 배신한 인간을 잘랐다. 조금 더 나은 종족으로 존재하기 바라는, 생명체의 대표이기를 바라는, 네 뜻이 제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우겨도 정액이 쏟아져 나오고 젖이 흘러나올 때 그것을 조절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김도희의 9분 18초짜리 '강강술래'는 상처받은 인간에게 위로를, 규범을 깨뜨린 자에게 자비 없음을 선물한다. 붉게 물든 전시장 한가운데에서 내 척수를 따라 흐르던 신의 목소리는 이렇게 속삭였다. "젖줄을 사랑하라. 정액을 사랑하라. 종족을 사랑하라. 너희가 만든 나는 너희를 용서하지만, 너희를 만든 자연은 너희를 용서하지 않는다. 네 진정 너의 불완전함을 안다면 네 종족을,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것만이 살 길."  

 

01234567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