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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es/Book

슈테판 츠바이크 저. 서정일 역 《감정의 혼란》 녹색광선. 2019

p.26

이러한 값싼 성취는 나의 대담함을 더욱 가중시켰으며, 길거리가 단지 모험의 장소로만 여겨졌습니다. 잠 못 이루는 육체만을 가지고 새로운 것, 지금까지 내게 금지된 것을 탐닉하려고만 했습니다. 이처럼 자기 기분이 이끄는 대로 시간을 갉아먹고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에 도취되는 것은, 구속의 감옥으로부터 갑자기 석방된 모든 젊은이들의 공통된 특성인지도 모릅니다.

 

p. 86

고귀한 남성의 우울은 늘 젊은이의 정신을 강하게 붙드는 법입니다. 자신의 심연 아래를 응시하는 미켈란젤로의 사상과 처 절하게 내면을 향해 꾹 다문 베토벤의 입, 이렇듯 세계 고뇌를 가린 비극적 인 가면들은 모차르트의 은빛 멜로디 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물 주위에 밝게 퍼지는 빛보다 더 강력 하 게 청년을 감동 시킵 깁니다. 사실, 청춘은 그 자체로 아름다워서 아름다움을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하지만 청춘의 힘은 활력이 지나치게 넘쳐 흘러서 비극적 인 것으로 치닫기도하고, 아 직 경험해 보지 못한 피를 달콤하게 흠뻑 빨아 들이기까지 합니다. 또, 그런 이유로 정신적 고뇌 속에서도 청춘은 위험을 받아들이고 형제 같은 마음으로 내민 손을 잡을 준비가되어있는 것입니다. 그토록 진실한 고뇌를 겪는 사람의 얼굴을 나는 여기서 처음으로 경험했습니다. 평범한 사람의 아들로 시민 계급의 편안함 속에서 큰 위험을 겪지 않고 자란 나는, 걱정이란 기껏해야 일상의 우스꽝스러운 가면 속에서 질투의 누런 옷에 싸인 채소 소한 푼돈을 딸랑 거리며 분개하는 것 밖에는 알지 못 했지요. 그러나 그의 우울한 표정에는 어떤 거룩한 요소들에서 비롯 된 무엇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우울은 여러가지 어 두운 비밀에서 나온 것이며, 무자비한 조각 칼이 일찍 피폐 해 진 뺨에 주름과 생채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p. 111

그럴 때면 나는 극도로 예민 해져서 종종 정신 나간 행동을 할 뻔했습니다. 이런 사소한 일들이 몇 시간, 며칠 동안 이미 내 마음을 충분히 심란하게 만들었 지요. 어쩌면 끊임없이 자극을 원했던 것인지, 과민해진 나의 감정은 그가 의도적으로 그 런 경우가 아닐 때에도 모욕을 느끼게되었습니다. 나중에 곰 곰이 성찰하면서 스스로를 위로 해 보았 자 내게 무슨 도움이 되었겠습니까? 이런 일들이 매일 똑같이 되풀이되었습니다. 그가 가까이 있으면 뜨거운 아픔을 느꼈고, 그가 소원하게 나를 대하면 차갑게 얼어 붙었습니다. 선생님의 소극적 태도에 항 상 실망하면서 어떠한 증표에도 안정을 찾지 못했고,이 런저 런 우연한 일로 인해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선생님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예민하게 느 낄 때마다, 나는 그의 부인에게로 숨어 들었습니다. 어쩌면 같은 아픔을 겪고있는 사람을 찾으려는 무의식적 인 충동 이거 나, 누구 에게라도 이야기를해서 도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해를 구하고 싶은 단순한 욕망 같기도했습니다. 은밀한 모임에 발을들이 듯 나는 그녀에게로 도피했습니다. 대개 그녀는 예 민한 나의 감성을 웃어 넘겼으며 고통을주는 그런 유별난 성 격에 익숙해 져야한다고 어깨를 으쓱하며 다소 냉정하게 일러 주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