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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es/Book

양자오 저. 박다짐 역 《이야기하는 법 - 사람은 의미와 가치를 어떻게 만들고, 이것은 무엇에 좋은가》 유유. 2019

 

p.31

인류가 가장 독특한 생물인 까닭은 자신의 경험을 한참 뛰어넘는 상상력을 지녔고, 현실과 진실의 범위를 훌쩍 넘는 호기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인간과 같은 호기심을 가진 동물은 없다. 호기심이 많다고 알려진 고양이도 인간만큼 호기심을 지니기는 불가능하다. 인간처럼 무료한 상태를 무서워하는 동물도 없다.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현실은 무료하다. 현실만으로는 삶이 너무 보잘것 없어 보이고, 현실은 자극적인 화제를 제공하기에 부족하다. 인간의 상상과 호기심을 풀어내고 쏟아 놓게 하는 데는 역시 이야기만 한 게 없다. 이야기는 현실에서 소재를 얻지만 온갖 소재를 뒤섞는 방식으로 현실 바깥의 것을 만든다. 비현실적이고 사실이 아니라서 이야기는 흥미롭고 가치있다. 

 

p.44
참된 이치가 아니고 그저 이야기이거나 이야기를 암시하는 것 뿐이라고 해도 그렇다. 종업원의 말은 '샤오창'이라 불린 쥐에게 내력이 있으며, 그 쥐가 특수한 재주나 경험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 보인 것이므로 쥐는 자신을 식별할 수 있는 전용 호칭을 가지게 된 셈이다. 

 

p.36

빛의 기원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북극권에 사는 이누이트족이 하는 이야기다. 세계가 막 만들어졌을 때 까마귀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진 콩을 쪼아 먹으려고 한참을 찾았는데 찾기가 너무 힘들어서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세상에 빛이 있다면 땅에 있는 콩이 잘 보일 텐데. 그러면 쪼아 먹기도 얼마나 편해질까" 까마귀는 열심히 생각하고 또 생각했고, 그 결과 세계에 빛이 가득해졌다.

 

pp.36-38
인간이 논리와 분석에 익숙해져서 세계를 해석할 때 더 이상 이러한 이야기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해도, 이야기는 마치 생명을 가진 것처럼 방법을 바꾸어 우리의 마음과 신념에 계속 영향을 미친다.
이누이트족의 까마귀 이야기는 프랑스의 유대인 작가 시몬 베유의 책에 나온다. 세계 대전이 벌어지던 암울한 시기에 신념을 유지하면서 작가는 이렇게 적었다. "진정한 희망과 기대와 소원은, 정말 간절히 바라고 기다린다면 끝내 실현된다." 20여 년 후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이 이야기가 기록된 책을 읽었다. 당시 외에 선천적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아들로 인해 극도의 비관에 빠져 있던 그는 까마귀 이야기에서 깊은 충격을 받았다.
오에는 충동적으로 어머니에게 말했다. "아이를 가라스カラス라고 부르기로 결심했어요. 오에 가라스가 어머니 손자 이름이에요." 잔뜩 화가 난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튿날, 호적 사무소에 간 오에 겐자부로는 순간 생각을 바꾸어 아들 이름을 '히카리ひかり'로 고쳤다.
오에 히카리는 뇌에 손상을 입어 지적 발달이 더뎠지만 아들에게 '히카리'라는 이름을 붙이 부모는 땅 위에 떨어진 콩을 쪼아 먹는 까마귀처럼 끊임없이 기대하고 희망을 걸었다. 훗날 오에 겐자부로는 히카리가 새 소리에 각별히 민감하고 정확하게 반응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음악을 접하게 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지적 발달이 늦은 장애아였지만 히카리는 특수한 능력을 지닌 음악가로 천천히 성장했고 작곡 뿐 아니라 오케스트라까지 지휘하게 되었다.
까마귀가 보여 준 희망은 정말 빛을 불러왔다. 태초에 세상을 창조한 신의 마음까지 거론하지 않아도 빛은 존재할 수 있다.

 

pp.63-64

우리 삶의 변화는 기실 조금씩 쌓여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금씩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조금씩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천천히 쌓이는 변화는 표현하기가 어렵고 기억하기는 더 어렵다. 기억하고 표현할 때 우리는 늘 이야기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극적인 포인트를 잡아 변화를 정리하고 농축해서 한 편의 이야기로 만든다. 빼어난 이야기로 우리는 자신을 표현하고, 핵심을 빠르게 전달할 수 있으며, 스스로를 정리해서 소설가나 정항하는 청년이 되는 발단을 만들기도 한다. 

 

p.71

밤이 되었으나 꾀꼬리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다 노부나가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꾀꼬리가 울어야 하는데 울지 않으니, 내가 그놈을 죽여야겠소"

그러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웃으며 말했다. "꾀꼬리가 울어야 하는데도 울지 않으니, 내가 그놈을 울게 만들겠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앉은 자리에서 허리를 쭉 펴고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꾀꼬리가 울어야 하는데도 울지 않으니, 나는 그놈이 울 때까지 기다리겠소"

 

p.72

실제로 좋은 이야기에는 대개 이질적인 삶을 대조하는 데에서 나오는 효과과 담겨 있다. 이야기는 보편을 드러내는 데 능하지 않다. 모두 다 같거나 모두 다 같기를 바랄 때는 표어나 명령 또는 조문을 사용하면 꽤 효과가 있다. 반대로 특징과 차이를 드러내고자 할 때는 이야기를 사용한다.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저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행동하는 까닭이 있다고 할 때, 이쪽도 옳고 저쪽도 옳다면 이들의 행위와 방식은 서로 충돌하여 불꽃을 튀길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흥미진진하고 듣기 좋은 이야기를 떠올리는 하나의 공식이다. 

 

p.87

나치는 광기에 젖어 600만 유대인을 학살했다. 600만 명이 비좁은 수용소 가스실에서 스러져 갔다. 이는 더욱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어떻게 600만명이 당한 괴로움과 고통을 진실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이야기의 힘을 빌려야 한다. 좋은 이야기, 선명한 이야기의 힘을.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말이다. 수용소에 갇힌 아버지는 어떻게든 어린 아들이 수용소의 암담한 공포를 느끼지 않게 하려고 갖은 애를 쓴다. 이 모든 것은 특별한 소품 놀이라고 아이를 속이고, 아이가 즐거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해 익살을 펼친다. 이것은 허구이며, 더욱이 수용소와는 반대되는 유희라는 양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슬프고 고통스러운 수많은 사실 보다도, 죽은 600만 유대인의 구체적인 생명을 한층 분명하게 느끼게 해 준다. 이때 600만은 더 이상 그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거대한 사건일수록 현실에서 괴리되는 '초현실'의 혼란이 생기기 쉽다. 우리는 그 속에 이입하지 못하고, 사건을 진실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때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이야기 뿐이다. 이야기가 거대한 사건 속에서 개개인의 세세한 사정을 드러내면, 한 생명의 극적인 이야기를 통해 거대한 것이 작아진다. 이때 우리는 그 거대함을 보고, 듣고, 심지어 품에 안을 수 있다. 그리하여 엄청난 사건과 숫자 앞에서 입을 벌린 채 어쩔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울고 웃을 수 있게 된다.

 

p.92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고 이야기를 복원하다 보면, 우연히 생겨난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는 세상을 낯설지 않게, 기이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이야기는 강한 투과력으로 공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다

 

pp.101-104

옛날 아주 먼 옛날, 중국 남쪽 사람이 모두 동굴에 살 고있을 때였 다. 그곳에 오씨 성을 가진 남자가 있었다. 그는 아내 두 명을 맞이했는데, 그중 한 사람은 엽한이라는 딸을 남기고 먼저 죽었다. 나중에 오씨 마저 죽고 나자, 엽 한의 험난한 나날이 시작되었다. 계모는 자기 딸만 예뻐하고 엽한을 학대했다. 엽한에 게늘 위험한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오라거나, 깊고 깊은 개울가에 가서 물을 떠 오라고시켰다. 어느 날 엽한이 개 울에서 붉은 빛 지느러미와 황금빛 눈을 가진 작은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았다. 엽한은 물고기를 몰래 대야에 넣고 키웠 고, 물고기가 점점 커지 자 동굴 뒤의 연못으로 옮겨 주었 다. 물고기는 평상시에는 늘 물속 깊이 숨어있다가 엽한이 오면 그제야 위로 떠올랐다. 그러던 중 계모가 물고기를 발견하고 잡으려했지만 갖은 애를 써도 잡을 수가 없었다.

계모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얼마 뒤 어쩐 일인지 계모가 엽한에게 새 옷을 지어 입혔다. 그런 뒤 계모는 연 한이없는 틈을 타 엽한의 낡은 옷을 입고 못가로 갔다. 엽 한이 온 줄 알고 물고기가 물 위에 나타나 자 계모는 날카로 운 칼을 꺼내 단칼에 물고기를 찔러 버렸다. 물고기는 매우 큼직 해 살이 두툼하고 맛도 일품이었다. 계모는 자기 친딸과 배불리 한 끼를 먹고, 남은 뼈는 거름 더미 속에 묻었다. 엽한은 물고기가 보이지 않자 슬픈 나머지 들판에서 목 놓아 울었다. 그때 무명옷을 입은 사람이 홀연히 나타나 그녀에게 말했다.“물고기는 네 계모 손에 죽었다. 물고기 뼈가 거름 더미 속에 묻혀 있으니, 어서 가서 물고기 뼈를 찾아 방에 숨겨 두어라. 앞으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물고기 뼈에게 부탁 하거라. 네가 원하는 것을 줄 게다.”엽한은 그의 말대로했다. 그러자 옷이든 음식이든 금은 보화 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다. 동굴 인의 축제 날이되었다. 계모는 친딸 만 데리고 축 제에 나가고 엽한은 가지 못하게했다. 엽한은 계모가 떠나기를 기다렸다가 비취가 달린 옷으로 갈아 입고, 황금색 신 발을 신고 동굴 축제에 나갔다.하지만 결국 눈치 빠른 동 생에게 걸리고 말았다. 엽한은 재빨리 빠져 나오다가 한쪽 신발을 잃어 버렸다. 누군가 엽한의 신발을 주워 이웃 나라 인 타 간국에 팔았다 왕이 황금 신 발을보고 진기하게 여겨 신발의 주인을 찾으라고 명했다. 타 간국 어디에도 황 금 신발에 맞는 발을 지닌 여인은 없었다. 왕은 단념하지 않고 신발 주인을 찾도록 곳곳에 사람을 보냈다. 그리고 마 침내 엽한의 집에서 나머지 한 짝을 찾아 냈다. 엽한은 다시 황금 신발과 비취가 달린 옷으로 단장하고, 선녀처럼 아름 다운 모습으로 타 간국 왕을 알현하러 갔다. 왕이 자초지종을 묻자, 엽한은 계모와 물고기의 일을 남김없이 털어 놓았 다. 왕은 엽한을 왕비로 맞았다. 어라, 어째 뒤로 갈수록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이야기 다. '신데렐라'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다. 그러면서도 완전 히 같지는 않다. 엽한의 이야기는 단성 식의 『유양 잡조」a에 나오는데, 단성 식은 별도의 주석을 달아 이런 말을했다.이 이야기는 이사 원이라는 늙은 하인에게서 들었 으 며, 이사 원은 광시 일대의‘동굴 인 '출신이라고. 동굴 인 하인이 들려 준 이야기가 어떻게'신데렐라 '와 이토록 닮을 수있는 걸까?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준 것이 며, 어디서 어디로 전파 된 것일까? 솔직히 알 수가 없다. 아 마 영원히 알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우리가 알 수있는 일이 한 가지있다. 문명과 문명이 서로 단절되고 교통이 지 극히 불편했던 시대에 이야기는 강한 투과력으로 공간의 한계를 뛰어 넘어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 놓았다. 이사 원과 단성 식은 '외부인'또는 '외국'의 존재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야기는 이미 그들과 신데렐라의 원형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럽인을 연결해 놓았다. 문명과 국가의 장벽은 이야기를 막지 못했다. 엽한의 이야기에서 엽한을 학대하던 계모와 여동생은 왕의 명령으로 돌에 맞아 죽는다.이를 가엾게 여긴 동 굴인이 계모와 동생을 묻어주고 그들의 돌무덤을 '오녀가'x (뉘우치는 여인의 집)라고 불렀는데, 훗날 이곳은 매우 영 험한 사원이되었다.이 부분은 유럽의 신데렐라 이야기에는 없다.하지만 고 아가되어 학대 받던 여자 아이와 떨어 뜨 린 신발 한 짝은 그대로 남아 이야기의 특별한 관성과 통합 능력을 보여 준다.